안녕하세요, 선도문화연구원입니다! 이번 '무궁화 · 태극기 사랑' 행사에 참여해 주시고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선도문화연구원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퍼뜨려 70년이 더 지난 오늘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온
무궁화의 깊은 의미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아래는 백일장 부분의 당선작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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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우리의 국기, 태극기 우리의 국화, 무궁화> - 장려상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갭이어
김의현
각 나라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와 국화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 국화는 무궁화이다. 오늘은 이 태극기와 무궁화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먼저 태극기에 대해 알아보자면 태극기는 흰 바탕에 중간엔 태극무늬, 4괘를 가지고 있다. 바탕의 백색은 백의 민족의 순결성과 밝음을 의미하며 우리 민족의 민족성인 평화와 포용을 상징한다. 중앙의 태극의 빨간색과 파란색은 각각 양(팽창), 음(수축)을 의미하며, 곡선은 에너지의 순환과 조화를 의미한다. 4괘는 건곤감리로 나뉘어지는데 건은 하늘, 봄, 동쪽, 인자함을 뜻하고, 곤은 땅, 가을, 서쪽, 의로움을, 감은 물, 겨울, 북쪽, 지혜, 이는 불, 여름, 남쪽, 예의를 뜻하며 대자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 무궁화는 無窮花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궁화는 9천여년 전 환국시대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으며, 환화, 천지화, 훈화, 근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다. 무궁화는 6월부터 11월 초까지 꽃피우며 꽃잎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으로 나뉘고, 꽃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무궁화는 단심계의 홑꽃이다. 또, 무궁화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100일 도안 꽃이 피는 것은 영속성과 정성을,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는 것은 끈질긴 생명력을, 논밭에 심어 농사에 도움을 주는 것은 상생, 봄에 제일 늦게 싹이 트는 것은 군자의 덕성, 가지를 자르면 더 무성해진다는 의병정신, 하루만 피는 것은 충절, 단심, 일심, 품위가 있는 군자의 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와 꽃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일본은 태극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탄압했으며, 무궁화를 불태우고, 뽑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고, 대한독립선언서와 조선소년군 휘장 등에 무궁화를 그려넣고, 무궁화 묘목을 길러서 무궁화를 보급한 한서 남궁억 선생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 선조께서는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노력하였지만, 무궁화는 아직 오해 속에서 길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역사는 왜곡되어 아직 우리의 제대로 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뿌리와 혼을 몰라 대한민국 사람,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기 어렵고, 구심점을 잡기가 어렵다.
이 말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다른 나라들보다 우월하다는 민족 우월주의가 아닌,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뿌리가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뽑혀서 휘둘리지 않고, 이 세계를 향해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총독부의 마직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패배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보다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아직 분열되어 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100년 이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민족의 영광을 되찾아 분열이 아닌 화합으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인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의 홍익으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길 바라고 나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자랑> - 장려상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전재윤
나는 무궁화, 태극기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는데 바로 생각난 것이 우리의 자랑이다. 무궁화,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화이고, 국기이다.
무궁화가 우리의 자랑인 이유는 일단 첫 번째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 9천년전 환국시대부터 함께 했다. 국자랑들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무궁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무궁화 관련 최초의 논문 무궁화고가 1927년 조선사상통신사 간행물<조선급 조선민족>에 우호익 선생의 무궁화 관련 최초 논문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정식으로 무궁화 가사가 들어간 국가가 제정되었다. 이렇게 무궁화가 우리의 자랑인 이유는 많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랑거리인 태극기는 조화, 창조, 평등을 상징하며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국기이다. 태극기의 빨간색은 양, 파란색은 음이며, 태극기 원에 있는 곡선은 음과 양의 순환과 조화를 의미한다. 바탕의 백색은 우리민족의 순결성과 밝음을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평화, 포용을 상징하는 우리 민족성을 나타낸다. 4괘 건, 곤, 감, 리는 대자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태극기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우리말 우리글인 한글 사용을 금지시키고, 무력탄압을 하였다. 그 속에서 민족대표 33인을 기다리던 학생들은 단독으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원래는 조선국기로 불렸던 국기 이름을 일본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한민족은 태극기로 부르자 약속하여 태극기아 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태극기를 든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팔뚝을 자르는 등 끔직한 만행을 저질렀다.
여기서 무궁화와 태극기의 공통점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아무리 무궁화와 태극기를 불태우고 없애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지켰다는 점이다. 그 점이 제일 자랑스럽다. 무구오하와 태극기가 이렇게 자랑스러워지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한민족 조상님들 덕분이다.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태극기를 계속 만들고, 무궁화를 지켰다. 목숨 걸고, 지켜주신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와 무궁화를 우리가 이어받아 지켜야하는데 요즘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개천절, 3.1절, 광복절 등 태극기를 달아야하는 날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또 까먹는 사람, 귀찮아서 안 다는 사람, 그냥 안 다는 사람, 심지어는 태극기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태극기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목숨 걸고, 지켜주셨는데, 우리는 지금 지킬 수 있으면서도 잊고 지내고 있다. 또 봄이 되면 벚꽃축제, 튤립축제, 철쭉축제 등 다른 꽃들을 대표하는 축제는 많은데 무궁화 축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나라 꽃을 대표하는 축제는 많은데 왜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꽃인 무궁화를 대표하는 축제는 많이 없을까? 의문이 들고 안타깝다. 태극기와 무궁화는 우리가 지켜야 하고,, 우리가 소중해 해야하고,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무궁화와 태극기를 잊고 살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나 태극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궁화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이렇게 태극기, 무궁화 백일장 대회 덕분에 잊고 있었던 태극기와 무궁화, 우리 역사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여서 너무 좋다. 앞으로 내가 먼저 자랑스럽게 생까하고, 다른 친구들, 사람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무궁화와 태극기가 더욱 자랑스러워졌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도 더 자랑스러워졌다.
중등부
<그 날의 태극기> - 금상
화산중
1314 윤이진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국화와 국기, 무궁화, 태극기.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이다. 특히 내게 무궁화와 태극기는 먼 타지에서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각별한 존재이다.
초등학교 재학 당시 합창단 활동을 했던 나는 6학년 여름, ‘정율성 합창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작곡가 이셨던 정율성 선생님을 기리고 선생님이 작곡하신 중국 노래를 부르며 한·중 어린이들의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만든 합창대회지만 우승시 중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대회의 깊은 의미보단 우승이 먼저였던 것은 사실이다. 대회곡 <아름다운 나라>의 퍼포먼스로 무궁화를 양 손목에 달고, 자켓에 태극기를 감추고 있다 마지막에 열며 국기를 보이기로 한 것도 당시의 내겐 우승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지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무궁화나 태극기를 사랑하지는 않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합창단원 모두가 몇 달간 주말에도 모이며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합을 맞춘 결과 유력한 우승후보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앵콜 공연 때까지도 우리나라 태극기의 소중함이나 중요함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우승 특권인 중국 여행 중에 우리 합창단은 중국 상하이의 다른 합창단과 합동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는 중국 노래 2곡, 아름다운 나라, 해금 연주와 사물놀이 공연을 준비했었다. 나는 합창과 사물놀이에 참가했고 준비과정에서는 역시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먼 땅, 중국에서 많은 타지인들 앞에 서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단순히 긴장되어서 뛰는 것이 아닌 조금 다른 감정이 벅차 올랐다. 조금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던 사물놀이 전통 복장을 입고 전통악기 북을 연주하는 것이 쑥스럽기는 커녕 자랑스러운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픈 마음에 북채를 쥔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다른 단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본지 연습할 때보다 훨씬 열심인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따라 양손 끝에 매달린 무궁화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고 먼곳에 와서 국화와 함께 있으니 더욱 힘이 났다. 수십번도 더 부른 노래가 지겹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고 내가, 우리가 한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보여 졌으면했다.
마지막에 숨겨둔 태극기를 자켓을 열어젖힘으로써 모두에게 보이자 하나뿐인 국기,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을 담은 특별한 태극기가 자랑스러웠다. 비록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노래로 보여준 애국심은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그 날 이후로 우리나라의 소중함과 외국에서도 힘이 되어준 무궁화와 태극기는 내게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이유> - 동상
화산중학교
1410 박솔빈
지나간 역사는 무섭다
핏빛으로 물든 대지 위
널부러진 시체와 무기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무서운 얘기는 잊어버리고 싶으면서
왜 역사는 잊으면 안된다 할까?
지나간 역사는 슬프다
억울하게 희생된 시체들
부당한 정치 속 잊혀진 사람들
우리의 슬픈 역사를 보며
우리는 열의를 불태운다
왜 즐거운 일이 아닌 슬픈 일에 더 열의를 불태울까?
역사 속에서 우리는 결심한다
더, 이상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계속 기억하겠다고
그 말을 듣고 태극기를 보았다.
무섭고 슬픈 역사 속 굳게 남은 우리의 의지
태극기를 보니 알 것 같았다.
무서워도 화가 나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발자국을 남긴 사람, 남기지 못한 사람
모두가 희생하여 우리의 의지, 역사인 태극기가 전해진 것임을
태극기, 역사는 그런 것 이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분노하고 더 분노해야 한다.
굳게 남은 우리의 의지
역사 속 사람들이 건네준 태극기를 덜어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슬프고 무서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궁화 ( 無窮花 )> - 장려상
용진중학교
3학년 홍수정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 무궁화. 과연 무궁화란 무엇일까?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궁화에 대해 물어보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무궁화란 무엇이며 나에게는 어떤 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선 무궁화의 꽃말에 대해 알아보자. 무궁화의 꽃말은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함께 해왔는데, 무려 9천년 전 환국시대부터 함께 해왔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리고 환화(桓花), 천지화(天指花), 훈화(薰華)등 지금의 무궁화라는 이름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며 우리의 곁을 지켜왔다고 한다. 현대에는 우리나라 정부 기관들의 많은 문양에 반영되어 사용이 되고 있다.
ex)법원, 국회 등. 나는 무궁화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타고 내려온 것을 무궁화에 대하여 생각해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무궁화에 대해 알아 갈수록 평소에는 그냥 지나가던 무궁화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가까이 본 무궁화는 모양도 제각기이며 알록달록 다채로웠다. 더 놀라운 것은 모양과 색깔에 따라 구분되어 이름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보는 무궁화는 홑꽃, 수술의 일부가 변하여 속꽃잎으로 변한 것은 반겹꽃, 수술이 모두 속꽃잎으로 변한 것은 겹꽃으로 3가지로 분류가 된다.
꽃 색깔은 중심부에 단심(붉은 색 무늬)이 없는 순백의 꽃을 배달계, 반대로 중심부에 단심이 있는 꽃은 단심계라고 한다. 단심계는 꽃잎 색에 따라 자단심계, 적단심계, 청단심계로 나뉘며 마지막으로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의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색 무늬가 있는 꽃을 아사달계라고 부른다. 나는 이 중에서 백단심계를 가장 많이 봤던 것 같다.
무궁화의 놀라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궁화는 6월부터 11월 초까지 꽃은 피우는 데 그 동안 한 그루에서 2, 3천 송이의 꽃을 매일 새롭게 피운다고 한다. 나는 꽃을 매일 새롭게 피워 내는 무궁화가 정말 신기하였다. 어느 꽃이 매일 꽃을 피울수 있을까? 새삼스레 우리나라의 국화가 무궁화인 것이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무궁화를 알아가며 본 오해들에 관하여 말하고 싶다. 사람들 대부분이 무궁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진실을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 오해는 무궁화는 병충해가 많고 더러워서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해가 생긴 이유는 일제가 무궁화를 일부러 화장실 옆에 심어서 퍼트린,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이다.
무궁화는 오해와 다르게 오히려 병충해가 없으며 깨끗하고 공해에도 강해서 도로변에서도 가로수로 가꿀 수 있고, 옮겨 심거나 꺽꽂이를 해도 잘 자란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여름철 정원수로 인기가 많아 다양한 품종 개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잇다. 두 번째 오해로는 무궁화 꽃가루 때문에 눈병이나 피부명에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무궁화의 꽃가루는 눈병이나 꽃가루에 전혀 상관이 없지만 일제는 무궁화의 꽃가루가 병을 만든다고 ‘눈에 피 꽃’ 혹은 ‘부스럼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름들을 만들어 붙이며 거짓말을 퍼트렸다. 세번째 오해는 무궁화는 키가 잘 자라지 않아 빽빽하게 심고 다듬어 울타리 나무나 조경수 가꾸기에 적합하다는 오해이다.
일제는 무궁화의 좋은 품종은 다 없애버리고 못난 품종만 남기고는 생울타리로 사용하면 좋다고 가르쳤다.
실제로 무궁화는 혼자 심어서 잘 기르면 왕성하게 번식하여 아름드리 나무로 이쁘게 키울 수 있다. 이것에 대한 근거로는 강릉 방동리에 있는 가장 오래된 무궁화를 이야기 할 수 있다. 무려 이 무궁화는 높이가 4m에 둘레 1.46m로 정말 커다랗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제에 의해 생긴 무궁화에 대한 오해는 슬프게도 아직까지 이어져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무궁화는 키가 작은 나무인 줄만 알고 있던 때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옳은 사실만을 기억하고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를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무궁화는 나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옆에서 알려주고 꿋꿋이 지켜준 오랜친구같다. 무궁화에 대해 자세히 안 만큼 더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화인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무궁화가 전국 각지에 널리 퍼지면 좋겠다.
<무궁화> - 장려상
용진중학교
3학년 김현규
무궁화, 우리나라의 국화로 지지 않는 꽃이라고 알려져있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다. 나는 솔직히 무궁화를 자주 마주할 일이 많지 않았다. 밖은 좋아하지 않아서 나가지도 않고, 꽃을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더라도 TV에서 짧게 보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무궁화라고 하면 딱히 생각 나는게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10월 3일 개천절을 기념한 것인지 학교에선 무궁화를 그리고 무궁화에 관한 안내장을 나누어주었고,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무궁화에 관한 설명글을 보았다. 몰랐는데 무궁화는 아주 역사가 깊은 꽃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받은 안내장을 보니 고조선대 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궁화에는 슬픈 역사도 담겨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일제는 무궁화를 모두 뽑아 불사르고, 그 대신에 벚꽃을 심어 우리 민족의 꽃을 없앴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정신을 없애기 위해 무궁화를 뽑아 없앨 정도면 일본 사람들도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정신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먼 과거 고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궁화를 나는 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별거 아닌 것처럼 대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국화로 상징되어진 무궁화에 대해서 더 알고 생각해보아야할 것 같다. 그리고 안내장을 보고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고위기구들 그러니까 정부, 법원, 국회의 문양은 모두 무궁화의 모양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무궁화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궁화가 심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무궁화의 냄새를 맡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새롭다.
내가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집 마당 한 켠에 무궁화를 기르고 싶다. 무궁화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예를 들면 무궁화는 매우 지저분한 꽃이라거나, 무궁화의 꽃가루는 몸에 해롭다거나 하는 오해이다. 이런 오해들도 일제가 퍼뜨린 유언비어라고 하니 안심하고 무궁화를 기를 수 있겠다. 그리고 관심이 없어 가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무궁화와 관련된 관광지에 방문하여 보고싶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완주에서만 해도 무궁화가 정말 많으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무궁화를 볼 수 있겟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철쭉과 무궁화를 잘 구분하지 못했었는데, 안내장에 그림이 상세히 기록되어있어 이제는 잘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요즘 사람들이 무궁화를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고 자주 보지도 못 하는 것 같다. 아주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켜왔던 무궁화를 잊지 말고 매년 개천절 때만이라도 한번쯤은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애국가에도 나온 무궁화를 잊지 말고 생각하여야겠다. 그리고 여담으로 무궁화는 지지 않는 꽃으로 알려져있는데 사실 지지않는 것이 아니라 낮에만 꽃이 피고 밤에 지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옛 우리나라의 민족의 정신같이 꽃이 진듯해도 다시피고 져도 다시 피는 바로 이 것이 우리나라 민족의 정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민족의 정신과 무궁화의 끈기를 바탕해서 우리나라 국화를 무궁화로 정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 수필을 쓰면서 내 경험을 생각하고 내가 무궁화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였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보니 내가 무궁화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닥 많지 않고 오히려 너무 적다고 생각하였다. 이 수필을 쓰는 기회를 통해 무궁화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종류와 특징도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무궁화를 주제로 수필을 쓰라고 하셔서 좀 생소했지만 다 쓰고 보니 내가 부족했던 무궁화에 관한 지식을 쌓은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못쓸 것 같아서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 막상 써보니 아까 앞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를 쓸까 수필을 쓸까 많이 고민했었는데, 수필을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수필을 선택해서 더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은 것 같다.
<우리는 무궁화이다> - 장려상
화산중학교
2학년 2반 김태희
올해에 유난히 무궁화가 늦게 지기 시작하였다.
10월의 마지막이 다가오는데도 무궁화 몇 송이는 여전히 활작 펴 있었다. 오늘따라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있는 저 꽃이 안쓰러웠다. 이른 새벽에 만개했다가 저녁에 오므려야만 하는 무궁화의 짧은 인생이 우리 조선 학생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우리나라 땅을 빼앗은 이후로 조선이 잃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 재산, 우리 문화, 우리 언어, 우리의 권리……. 일본에게 득이 되는 것은 모조리 수탈하였고, 일본에게 독이 되는 것은 죄다 없앴다. 그렇게 남은 것이 학생을 무지한 인간으로 만드는 교육이었다. 조선 학생들은 낮에 일본의 교육을 받아오며 수많은 차별을 감내하였다. 그러고 밤이 되어서야 진정한 공부를 하고, 일본의 횡포에 분통을 터뜨리고는 하였다.
그러던 1929년 10월 30일. 한 사건이 터졌다.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이 내가 다니는 학교, 그러니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조선인 학생을 희롱한 것이다. 그걸 본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 학생이 주먹을 날리면서 패싸움이 생기고 말았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그 모든 잘못이 우리 조선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조선 학생들은 언젠가 설욕을 다짐하며 각자의 길로 갈라졌다.
그리고 11월 3일, 그날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개천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일본의 중요한 날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조선인으로서, 기미가요를 부르며 우리의 지조를 잊는 짓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다함께 침묵의 시간을 보낸 후, 학교를 파할 시간이 되었다. 그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한마음으로 10월 30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일본 편을 든 광주일보에 쳐들어가 항의하는 일을 벌였다. 그 사이 광주중학교 학생들은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여간 놔두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은 힘을 합쳐 일본의 제국주의에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70여 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투쟁을 시작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일본 경찰들이 나타나 우리를 마구잡이로 붙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끝까지 저항하였지만, 어른의 힘과 무기를 버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나 둘 무릎을 꿇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눈빛이 포기가 아니라 싸우고자 하는 매서운 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일본 경찰의 수는 갈수록 많아졌다.
“해산!”이라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몇몇 학생들이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뒤로 일본 경찰이 뒤쫓았다. 얼핏 보기만 해도 이제 우리가 패배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일어서야 했다. 마치 피고 짐을 반복하여 100일을 버티는 무궁화처럼.
남겨진 학생들은 모두 잡혀 들어갔다. 아직 창창하고 밝은 우리는 철창 속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그 생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거다. 우리는 결국 단명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이가 일어설 것이고, 또 그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이가 나설 것이다. 우리를 시작으로 하여금 이제 조선이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단명은 결코 단명이 아니다. 이 끝없이 반복하는 영원한 단명은, 마지막 생명 하나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다. 먼 훗날, 우리의 겸허한 단명이 영원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조선 역사 중 한 획은 우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궁화가 무엇이던가. 짧은 만개에 단명을 나타내면서도, 많은 단명으로 생을 연장해 염원을 상징하기도 하지 않던가. 우리는 무궁화이다. 죽기 직전에 뒷사람에게 가슴에 품고 있던 칼을 넘겨주며, 다음에 칠 것을 기약한다. 그런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을 무찔러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지.
거의 1년 동안 갇혀 지냈다.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그 와중에 영문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걸었다. 두리번거리니 꽃 한 송이가 보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꽃들은 모두 져있으나 그 꽃 한 송이, 그 무궁화만큼은 억지로 살겠다는 듯 오므릴락 말락 하였다. 나는 홀린 듯이 그 꽃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양쪽의 간수들이 팔을 더 단단히 옭아맬수록 나는 미칠 노릇이었다. 참지 못한 나는 악을 쓰며 난동을 부렸다. 곧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가 하해지며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우왕좌왕거리는 사람들의 발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내눈에 들어찬 건 붉은색 뿐이었다. 눈이 감기기 직전까지 보이던 것은. 새빨간 노을, 검붉은 피, 그리고 조용히 꽃잎을 오므리는 마지막 분홍색 무궁화.
<태극기와 무궁화가 주는 감정> - 장려상
화산중학교
1324 정수연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이다. 무궁화는 한번 피면 오랫동안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들은 오랫동안 피어있는 무궁화를 보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짐하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했던 나쁜
일들 중 하나는 무궁화를 뽑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억눌러야 하는데 애국심을 키우는 무궁화를 뿌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내 생각엔 위로 꼿꼿이 활짝 핀 무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국심을 돈독하게 해준 것 같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오랫동안 피어 있는 반면에 일본의 국화인 벚꽃은 활짝 피었다가 금방 진다. 무궁화는 한번 반짝하고 끝나는데 그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일편단심 나라를 사랑하는 우리 한민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다른 아파트 단지들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무궁화가 피어 있다. 나무와 꽃들이 예쁘게 다듬어진 우리 단지에는 커다란 무궁화가 몇 송이 피어있다. 어렸을 때는 무슨 꽃인지 몰랐었는데 학교에 다니며 무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봐왔던 철쭉이나 코스모스 같은 꽃들과는 다르게 키도 크고 기다랗고 노란 술도 있었다. 분홍색과 보라색이 자연이 만든 조화로 어우러져 예뻤다. 다른 꽃들과는 다르게 커다란 꽃 하나만 우뚝 서 있는 무궁화는 나에게 독립적으로 보였다.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 무궁화가 무리 모여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본 적 있는 분홍색 말고도 흰색, 보라색의 무궁화들이 있었다. 집 근처에도 무궁화를 보았지만 이렇게 많이 꽃밭을 이루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널리 피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외국에 더 많이 피어있는 것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벚나무로 만든 가로수길이나 튤립 꽃밭은 자주 보았는데 무궁화 꽃밭은 여럿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태극기에는 흰색 바탕에 밝음과 순수, 네 모서리에는 건곤감리 4괘에는 하늘, 물, 땅과 불의 뜻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고민을 거듭해 좋은 넣은 태극기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왔다. 8살 때부터 월요일마다 해온 애국조회에도, 교실에 있는 칠판 위에도, 학교 건물 앞에도 태극기는 항상 걸려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태극기가 나에게 특별해진 것은 중국에 다녀와서부터였다.
지난 년에 가족들과 중국 상하이에 다녀왔다. 상하이의 옛 임시 정부였던 건물에 들어가 그때를 느껴보았다. 긴급시 탈출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구멍, 몰래 편지나 소포 등을 받기 위한 작은 문들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곳곳에 걸려 있던 태극기였다. 지금의 태극기와는 크기와 모양이 조금 달랐지만 태극기임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새 것처럼 하얀 태극기가 아니라 손때가 묻어있는 듯한 누런 색이었다. 오히려 그런 누런 태극기가 나에게 의미깊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을 위해 뛰었고, 독립투사들은 가슴 품에 태극기를 넣고 다녔다. 임시 정부에서 보았던 태극기는 그런 태극기였을 것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똑같은 새하얀 태극기보다 임시정부의 태극기가 더 깊게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태극기를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그 심정과 열정이 생각난다.
태극기와 무궁화는 언제나 내게 벅찬 감정을 준다. 무궁화는 독립심과 일편단심 꿋꿋한 모습을 느끼게 해주고 태극기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다른 나라 꽃들보다 무궁화를 흔히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무궁화를 더 심었으면 좋겠다. 태극기는 우리 생활에 깊게 스며들어 있지만 내가 느끼듯이 다른 사람들도 태극기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름다운 우리 국화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고 태극기에 대한 기본 지식들을 더 익혀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릴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 장려상
화산중학교
1412 심민재
독립운동을 외친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진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그들이 피를 흘린 이유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온갖 정성을 담아서
매일매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분홍색 무궁화
정성을 담아 소중히 키운 이유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널리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 모두
태극기 들고 무궁화 한 아름 안고
자랑스런 표정 지으며 가자
